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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13 결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2020년 1월 19일.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시간 순으로 나열을 해보자면, 

돋보기안경을 쓰셨던 순창 할머니께서 전래동화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어주셨던 기억,

아버지 서재에 있던 이름 모를 책을 집어 들어 읽다가 그게 역사적 인물인 오다 노부나가의 이야기란 것도 모른 채, 울지 않는 새는 죽일 것인가, 울게 할 것인가, 울 때까지 기다릴까에 매료되었던 기억, 

그리고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UFO와 외계 문명에 대한 책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과연 이집트의 초고대 문명은 사실 외계인이 이루고 간 것인가를 고민하던 기억, 

역시 대학교 도서관에서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어 집어 들었던 고승덕 변호사의 차트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런 차트로 주식을 어떻게 예측한다는 말인가 하고 실소했던 기억,

첫 회사에서 출근길에 읽을 책들을 매일 사내 도서 대여 시스템에서 대여하다가 한 달이 지나자 회사에서 대여 순위 1등을 했던 기억.

지금 회사에서도 북러닝을 매달 신청해서 하고 있는데 꽤 쏠쏠한 것이, 문제를 전부 맞히면 추첨을 통해 1만 원 기프티콘을 준다.

그래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북러닝을 신청했다.

 

 

의사결정을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식을 비롯한 투자와 도박은 매우 비슷한데, 포커 플레이어로써 성공한 작가가 쓴 책이다 보니 참고할만한 글들이 몇 가지 있어서 한번 옮겨본다.

(참고로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결정을 잘하는 법에 대해서는 공부를 잘하는 법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개개인의 공부방법이 다 다르듯이, 각자의 의사결정 과정을 돌이켜보고 개선해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요인에 딱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의사결정의 질과 운이다.

 

우리는 어째서 운과 실력을 잘 구분하지 못할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사후 확증편향이라는 것에 언제나 굴복하기 때문이다.

즉,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가 매우 밀접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의사결정은 좋은 의사결정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온 의사결정은 나쁜 의사결정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이 주식을 그때 샀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사지 못했지만, 그 종목은 상승했으므로) 나는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오면 그 종목을 사야겠다, 라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진화론적으로 우리는 오래전부터 무질서한 자연을 바라볼 때, 규칙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왔고 그것은 생존율에 크게 기여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제약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착시 현상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착시현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의사결정으로 인해 발생된 결과로부터 피드백을 가져올 때, 그것이 의사결정 과정 때문인지, 아니면 운 때문인지를 분리해야 한다.

 

 

아주 유명한 뮐러 - 라이어의 착시. 알고 보더라도 보조선이 없으면 착시를 인정하기 힘들다.

 

 

보통 우리는 인생을 이야기할 때 바둑이나 체스와 같기를 기대한다.

어떤 수가 있고, 그 수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듯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인생은 체스가 아니라 약간의 속임수, 블러핑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포커와 같다.

 

결과로 판단하기, 즉 작은 일련의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의사결정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하기는 체스를 배울 때에는 꽤 타당한 전략이다. 하지만 포커에서는 그렇지 않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무엇인가를 듣는 순간 그것을 믿어버린다는데 있다.

우리의 의식은 무엇에 대해 듣고 나면, 그것에 대해 확인하여 판단한 뒤에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실이라 믿고, 나중에야 그것을 확인하고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편협하지 않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믿음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구 결과는 사실이 그 반대임을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에 걸맞게 믿음을 바꾸기는커녕 그 정보를 우리의 믿음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주더라도 의사결정의 과정은 편향되기가 쉽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짜 뉴스와 SNS다.

믿음이 일단 형성되면 그 믿음을 바탕으로 선택과 판단을 하기에 믿음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연결되어 있는 SNS를 통해서라면 가짜 뉴스가 전파되기 쉬운 상황이 된다.

굳이 가짜 뉴스가 아니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해 일종의 간증과 같은 성공담을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는데 익숙하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떤 종류이건 간에 그 달콤함에 취해 스스로 눈을 감으면 안 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를 매 순간마다 예측하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하다.

어쩌다가 미래를 맞출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운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항상 운이 따라주었다는 사실에 겸손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결론은 책의 말미에 있는 다음 구절이다.

 

... 우리는 사실 장기적인 행복에서 거의 무의미한 것들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이때 의사결정은 반응적으로 바뀌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데나 현 상태 속의 최신 변화에서 느낀 긍정적 감정을 애써 유지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자기 위주 편향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나쁜 결과물로부터 얻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운을 탓하고, 좋은 결과물로부터 얻은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이 자기 실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말이다.

 

우리의 결정은 언제나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자만을 버리고 매 순간을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