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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64 해창 막걸리 12도

2021년 1월 11일 

 

술을 처음에 잘못 배워 조금은 과격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가장 후회되는 점 두 가지는 바로 세상에는 좋은 술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런 술들을 제대로 마주해보지 못했다는 점이 하나요, 과한 음주로 인해 많은 뇌 손상, 간 손상을 겪었다는 점이 둘이다.

세상에 많은 좋은 술들이 많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 술들에는 그 술에 맞는 나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나이에 어떤 술이 어울리느냐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술을 접하는 데 있어서 이제 우리나라도 많은 변화가 있고, 인식들이 바뀌어서 이제는 누구나가 즐거운 음주 문화를 가질 수 있는 바탕은 마련이 되었다고 본다.

 

나는 기본적으로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의 전통 술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에는 인공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술들이 나오면서 더더욱 즐겨 마시게 된 것 같다.

처음 이 전통주라는 개념은 농활이나 보통 학교 앞에 있는 전통주점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데,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학교 앞에는 지리산이라는 간판이 거꾸로 달린 주점이 있었는데, 이 주점에 들어가면 두발로 걸어 나온 적이 드물 정도로 주점의 분위기와 안주, 그리고 서빙을 보는 사장님 따님이 참 아름다웠다.

지리산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 방이 몇 개 있었는데, 이 뜨뜻한 구들방 안에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하면, 어느 새인가 뒤로 점점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배 속에 들어간 막걸리의 효모들이 발효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항상 시키는 파전을 먹고는 결국은 먹었던 내용물을 꼭 바닥에 확인해보게 만드는 그런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는 막걸리를 참 좋아했고, 그리고 아직도 즐겨 마시는 편이다.

실제로 나는 막걸리를 먹고 숙취에 시달린 적은 없다.

 

그런 와중에 아무래도 국순당 막걸리가 만들어낸 느린마을이라는 브랜드는 막 거리를 대중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술집에서 시키다보면 장수 막걸리를 많이 마셨던 것 같은데, 실제로 이 느린 마을 막걸리를 마셨을 때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스파탐이 없는데도 충분히 달고, 가볍지 않게 묵직하면서도 생막걸리답게 숙성 기간에 따라 다른 맛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이렇게 막걸리 시장이 커지면서 어느 순간 부터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주조장들이 앞 다투어 각자의 술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너무나 좋은 술들이 세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랜선 송년회, 신년회를 하면서 여러가지 주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알게 된 새로운 막걸리 브랜드인 해창 막걸리를 시키면서 12도짜리 막걸리를 마셔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기존 막걸리들은 약 6도 정도를 가지는데 비해 해창 주조장은 6도, 9도 12도 18도까지 다양한 variation을 가지고 있다.

주문은 해창 주조장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서 하면 되는데, 6병 들이가 한 번에 주문할 수 있는 최소 세트이며, 반반도 가능하다.

나와 같은 경우는 9도 3병 12도 3병으로 주문했고, 12도의 경우 1만 1천 원, 9도의 경우에는 7천 원이었다.

택배비 5천 원이 추가되며 다음의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주문을 하면 된다.

 

해창 주조장 : 010-7474-7370
박리아 (농협) 302 1026 2751 41 

 

가격이 조금은 부담될 수 있겠다.
9도와 12도 둘다 마셔본 입장에서 가격이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막걸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비싸지 않은 술이다보니 생길 수 밖에 없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도수와 양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이라고 본다.

12도짜리 해창막걸리의 느낌은 걸쭉한 볼륨을 갖고 있으면서도 산뜻한 맛과 피니시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약간 요구르트의 맛과 같은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막걸리는 마치 기네스의 에인절 링과 마찬가지로 마시다가보면 막걸리 안에 있는 입자로 인해 에인절 링 같은 물결무늬가 생기는데 이것 또한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술은 대부분 그 술에 맞는 안주가 페어링이 되는데, 글쎄 이 막걸리는 어떤 음식과 궁합이 맞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에는 육회와 한번, 반주로 한번 먹었는데 모두 괜찮았다.

막걸리 안주를 고를 때는 막걸리가 쌀로 만든 것이라는 것에 착안하면 밥 반찬과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마치 새참 먹는 기분으로 먹으면 딱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술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고, 그 역사나 가치도 다양한데 살면서 이런 술의 다양한 모습들을 접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다양한 술을 적당히 때와 장소에 따라 마실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술들을 개발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