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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51 나의 아저씨 (2018)

2020년 6월 26일

뒤늦게 넷플릭스로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됐다.
아이유 주연의 이 드라마는 2018년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누릴 뻔 했으나 초기 도입 부분의 폭력적인 묘사가 이슈가 되어 여러가지 여론에 휘말렸다.
어쨌든 연말에 좋은 상도 많이 받고, 시청자들에게는 인생 드라마라는 꽤나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수작이기도 하다.
나는 주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는데 첫 2화까지를 반드시 버텨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2화까지를 잘 버텼고, 이제는 나도 인생 드라마라는 분류에 이 드라마를 추가하게 되었다.

이런 포스터라면 나 같은 사람은 실수로라도 클릭 안한다...


나의 아저씨라는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나는 미생이라는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본다.
미생이 이삼십대를 위한 환타지라면, 나의아저씨는 삼사십대를 위한 환타지랄까.
초반에 이선균의 발음이 잘 안들려서 나중에는 그냥 자막 켜놓고 봤는데 볼 생각이라면 이왕이면 처음부터 켜놓고 보는 편이 좋겠다.

이미 한참 지난 드라마지만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바람에 나처럼 새롭게 나저씨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매번 바뀌기는 하지만 한국 top 10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섬네일은 매번 바뀌는듯.


쌍갑포차는 원작을 좋아하던 차에 보려다가 제작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지 않고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도 나름 꽤 공들여 만든 모양새다.
한국 드라마가 꽤나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이 정도의 컨텐츠라면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도 있어 보인다.

나의 아저씨는 대사들이 꽤나 훌륭한데, 이런 대사들을 위화감없이 극 중에 녹여낸 연출과 연기가 그만큼 좋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여러 ppl들이 있었지만 오롯이 내 뇌리에는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만큼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장소, 그리고 연출이 보는 내내 훌륭했다.
술이 저렇게 숙취가 없이 흥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술은 언제나 흥을 돋구고 그만큼의 우울을 가져온다.

드라마 내내 이 따뜻하면서도 외로운 느낌은 참 특이하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라도 안보신 분들 중에 보실 분들은 다음 문단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지 마십시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은 우리의 삼사십대 아저씨들이 그렇듯 회사, 집 그리고 동네(가족) 이렇게 세가지 범주의 영역에서 생활을 하는데 겉으로는 평범한 것 같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꽤나 비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을 외국에 유학보낸 대기업 부장, 아내는 사시를 통과하여 변호사를 하고 있고, 동네에서는 세아들들 중 가장 훌륭한 평판과 인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회사에서는 끈 떨어진 존재, 아내는 외도를 하고, 동네에서조차 아직 대기업을 다닌다는 이유로 마음을 나눌 사람은 없다.
이런 묘한 설정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여러 곳에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영악하기 이를데없이 그려지는 아이유는 의외로 감정선이 섬세하고, 엄청나게 더러운 쓰레기장에 방치된 양심의 일부는 무균실에 있는 것처럼 깨끗한 채로 보존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아이유를 제외한 인물들은 과거의 영광 속에서 평범해지는 순간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그런 와중에 아이유라는 꽤나 특이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또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꽤나 영악하게 그려지지만 사실은 그렇게 영악하지 않다.
그런 무관심과 지속되지 않은 호의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그렇게 보이게 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선균을 둘러싼 일에 휘말리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의 본심은 숨긴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던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선의에 의해, 그리고 어른스러움에 의해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혹자는 이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소녀와 기득권에 속한 유부남의 구도에서 여러가지 성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나는 그런 시각이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는 그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이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 있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도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런 드라마를 두고 왜 무서운 마녀는 어째서 여자인가, 그럼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는 어째서 남자 목소리로 나오는가? 와 같은 질문을 하며 싸우고 싶지 않다.
이 드라마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공유하는 상처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 안에서 작은 환타지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드라마가 끝나는 내내 등장인물 거의 대부분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이선균이 되다가도 이지아가 되기도 하고, 박후산이 되기도 하고, 송새벽이 되기도, 고두심이 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등장 인물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내가 늙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내게 아이유는 공감하기 어려웠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상처받은 고양이 같은 연기를 꽤나 실감나게 해냈다.
귀엽고 약하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아이유를 좋아하는지도 알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연출과 연기에 이어 음악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잔잔하면서도 감정선을 건드려주는 ost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흥얼거리게 될만큼 중독적이다.
어른이라는 노래는 손디아가 불렀는데 원래는 가이드 곡이었으나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그대로 가기로 했다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배역에도 사연이 있는데 삼형제 중 큰 형인 박호산 역에는 원래 오달수가, 어머니 역에는 고두심 대신 나문희가 캐스팅 되었다고 하는데 각각의 이유로 변경된 것이라고.
드라마를 다 본 입장에서 이 역할들의 배우들을 바꾸어서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적역이었다고 본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이 밤에 촬영을 해야해서 다들 힘들었다고 하던데 촬영지 또한 기가 막히다.
철길과 단칸방, 그리고 단골 술집, 정희네까지.
정희네는 실제로는 가정집이고 내부는 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오래간만에 잠을 설쳐가며 즐겁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뒤늦게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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